MBC, 과연 살을 주고 뼈를 벨 것인가?

말많던 'MBC 사태'가 김미화씨의 유임, 신경민 앵커의 교체로 결정이 났다. MBC 경영진 측이 주장하는 이유야 나름 있겠지만, 정치적 외압 및 MBC가 그에 대해 알아서 기었을 것이라는 분석과 비판이 주를 이룬다. 나도 그러한 분석에 동감한다.

그러나 비판에는 동감할 수가 없다.

MBC가 지금 언론의 독립성 차원에서 위기를 맞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KBS와 YTN에 비하면 아직 애교 수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양 방송국의 경우를 보자. 사장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멀쩡하게 있던 프로그램 줄줄이 폐지되고 항의하는 기자 및 PD들에게 날리는 징계 또한 에누리 없이 독하기 그지 없다. KBS 메인 뉴스 꼭지들의 편성을 보자. 정부 비판적인 기사들은 웬만해선 나오지 않고, 설령 나온다 해도 뒷순으로 밀리는 것은 인터넷의 필부들의 눈에도 금방 눈에 띨 정도다. 어찌 메인 앵커 하나 바뀌는 것에 비할까?

물론 정도가 약하다고 해서 MBC의 작금의 행태가 옳은 것은 아니다. 다만 정권 교체때부터 MBC는 MB 정부와 한나라당에게선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MBC의 민영화가 진작 추진됐거나 적어도 엄기영 사장은 이미 날라갔어야 했을 터다. 그러나 엄기영 사장의 MBC는 MB 정부가 미디어에 칼을 휘두른 지 1년이 훌쩍 넘어가는 지금도 근근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버티고 있다.

사실 미디어의 영향력은 공중파 방송이 최고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어지러운 세상에 그나마 국민이 알아야 할 정보를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어느 방송사에 걸 수 있을까? KBS? YTN? 아님 SBS? 나라면 MBC에 마지막 희망을 걸겠다. 그런 의미에서 MBC는 무너져서는 안되는 미디어 최후의 보루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MB 정부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MBC를 상대로 칼을 갈고 있다는 데 있다. 이 상황에서 손에 피 한방울 한 묻히고 MBC가 미디어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살을 주고 뼈를 벤다는 검도의 기술(?)은 이럴 때 필요할 것이다. 신경민 앵커도 지키면 좋겠지. 뉴스에서는 줄창 정부 까고. 국민들이야 시원할 것이다. 그래봐야 그런 식으로 6개월 방송국 운영하면 엄기영 사장이 날라갈 확률은 99%다. 그리고 새로운 사장이 들어오면? 신경민 앵커와 김미화 씨만 날라가면 다행이리라. MB 정부의 무능과 실책이 극에 달할 것이 뻔해 보이는 임기 중, 후반기에 우리는 어용 사장이 운영하는 공중파만을 시청하며 살아야 한다. 미네르바도 1년 6개월을 구형받는 세상에서 그런 상황은 정말 최악이다.

정리해보자. 내 의견은 이렇다.
MBC가 신경민 앵커를 교체한 것은 정치적 외압에 알아서 긴 행태가 맞다. 그래도 뜨겁게 달군 것에 비하면 막판에 김미화 씨라도 건졌다. 독설닷컴에서는 김미화씨는 블러핑이라고 했는데 그것도 맞는 것 같다. 문제는 누구에게 쓴 블러핑인가 하는 것이다. MB 정부에게도 김미화씨는 훌륭한 블러핑이었다. 평소에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두명의 방송인을 모두 손보려 했었다는 정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내에서 반발이 크게 터지자 며칠 시간을 끌어 논란을 키운 뒤 '어쩔 수 없네요'라는 제스쳐와 함께 그나마 한명을 건진다. 진검이 살을 베려는 순간 마지막으로 몸을 틀어 그나마 상처를 반으로라도 줄인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까? 나는 MBC가 격렬히 MB 정부에 저항하다 장렬히 전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떻게든 정부 임기말까지 가늘고 길게 버티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최후의 순간에 결정적인 한방 - 그것이 권력 핵심부의 부정 부패건이 되었건 정권의 결정적인 정책 실패가 되었건 - 을 날릴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보존하길 간절히 바란다. 그를 위해서 신경민 앵커 한명이 날라갔다면 (그리고 이것이 비록 정부를 달래는 한시적 미봉책이었다 하더라도), 솔직한 내 생각에 이건 저렴한 댓가라고 본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지금 MBC 내에서 경영진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있는 기자들과 PD들의 노력 역시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경영진과 그들이 각을 세우면 세울수록 MBC 전체가 정을 맞을 확률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P.S. 좀 비겁한 사족이긴 한데, 사실 내가 이렇게 생각해봐야 엄기영 사장의 의도가 그게 아니었으면 내가 위에서 줄줄이 적은 것이야말로 완전 헛소리가 된다. 다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고 이런 식으로 접근한 의견이 보이지 않길래 내 개인적인 공간에서라도나마 끄적이는 거다.

by 비토 | 2009/04/14 08:33 | 트랙백들 | 트랙백 | 덧글(0)

자그니의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대한 개념 정리"에 대한 딴지 몇 개

목수정 VS 정명훈 사안의 토론이 결국 "노블리스 오블리주"에까지 이르렀다.  이와 관련하여 자그니가 그의 글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대한 개념을 정리했다. 읽고 있자니 몇 가지 예시가 눈에 거슬려 딴지를 걸어본다.

1. 한국 전쟁에서 이승만의 행태가 윤리적 차원의 사회적 책무를 어겼을 뿐, 법적 책무를 위반한 것은 아니라는 부연 설명 -명백한 오류다. 대통령은 취임할 때 선서를 하며 이 선서의 내용은 헌법에 준한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낭독했을 당시의 선언문(제헌 헌법에 기재된)은 다음과 같다.

第54條 大統領은 就任에 際하여 國會에서 左의 宣誓를 行한다.

「나는 國憲을 遵守하며 國民의 福利를 增進하며 國家를 保衛하여 大統領의 職務를 誠實히 遂行할 것을 國民에게 嚴肅히 宣誓한다.」


즉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하는 순간 그에게는 "국민의 복리를 증진하고 국가를 보위"할 법적(그것도 헌법에 근거한)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강 다리를끊고 도망간 것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했다는 관점에서 위의 '대통령으로서의 법적 의무'를 방기했느냐로 논의는 해 볼 수 있을지언정, '애초에 법적 책무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은 할 수 없다'는 관점은 그래서 명백히 잘못된 관점이다. 헌법이 애들 장난인가? 그렇다면 취임식날 말이 꼬여 선서를 잘못한 죄로 오바마는 왜 취임 선서를 두번이나 해야 했겠나?

2. 포에니 전쟁시 (전현직) 집정관이 13명이나 죽어나간 것이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한 예다. - 시오노 나나미가 직접 이렇게 언급했는지도 모르지만 난 이런 해석에 큰 의구심이 든다. 당시 로마 공화국의 군사제도하에서는 2개 군단을 통솔할 수 있는 총사령관은 집정관 및 고위 관직 출신만이 가능했다. 그리고 이들이 군단을 거느리고 나가서 격한 전투끝에 전사했다면 이는 포에니전쟁 당시 로마가 힘겨운 전쟁을 치뤘다는 예증은 될 수 있을 지언정 지배 계급이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모범을 보여줬다는 증거는 되기 힘들다. 막말로 우리나라에서 전쟁났는데, 국회의원 아들이 정상적으로 징병되서 전선에서 싸우다 죽었다면 그게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발현인가? 아닌 것이다. 국회의원 아들이면 그 상황에서 군대 뺄 수도 있었을 텐데 멍청하게(?) 끌려나가서 죽었으니 숭고하다? 그건 아니쥐!!! 노블들이 서민처럼만 해 줘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행사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라면 그 관점은 틀렸으며 위험하다.
댓글에도 나오지만 "오블리주"의 본질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비난을 듣지 않지만) 공익을 위해 (여기서 공익이 무엇인지는 노블이 판단한다, 서민이 아니라.) 노블 자신의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하고 행'하는 것이다.

개념 정리라는 것이 사례가 많을 수록 더 적확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사례 중 몇개에 위에서 언급한 대로 오류가 있다면 그 개념정리에서 설령 결론이 분명하다 하더라도 그 정확성에는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그니는 파워 블로거라하니 그의 글을 읽고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대해 개념 정립을 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기에 내게 보이는 한에서의 문제점을 이처럼 짚고 넘어간다.

by 비토 | 2009/04/11 11:25 | 트랙백들 | 트랙백 | 덧글(3)

6월 10일, 광화문에 촛불이 몇 개였었는지 알려주랴?

어딘가에 산다는 원시 부족중이 사용하는 수 체계는 다음과 같단다. 하나부터 열까지 세고, 그 이상은 '많다'로 통일. 우습다 못해 어처구니 없게 들리지만, 사실 21세기 디지탈 첨단 문명권 속에 사는 우리네도 헤아리는 숫자가 어느 이상 넘어가면 감이 없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6월 10일 전국적으로 있었던 촛불시위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모였는지, 특히 서울 광화문에서 모인 사람들의 숫자에 사람들의 관심이 많다. 그 수가 만이 넘은 것은 확실하니 이미 정확히 헤아리긴 애저녁에 글렀고 결국 많다의 범주에서 세는 사람 맘대로 그 숫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경찰이 주장하는 8만에서부터 주최측이 주장하는 50만, 일부가 주장하는 70만까지... 그러나 그 차이가 너무 크다. 그러다 보니 심심찮게 여러 말싸움이 오가는데,....

애초에 촛불 시위 행렬을 찍은 사진을 자료로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한 숫자세기는 꽤  그럴듯한 접근법이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방법이 불량화소 찾아내는 프로그램을 써서 색깔이 있는 모든 픽셀을 헤아리는 식이라, 20만이라는 결과에 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셌다. 물론 하나하나 센건 아니다. 나도 컴퓨터를 쓰긴했다.

Matlab이라는 툴을 사용했다. 이것은 그래픽 처리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래픽 데이타를 픽셀 수준에서 직접 읽고 수정할 수 있는 일종의 툴(물론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는 Matlab의 기능 중 새발의 피다)이다. jpg 파일을 읽어들여서 각 픽셀의 rgb 데이타를 근거로 촛불에 근접한 색깔만 찾아낸다. 그리고 그 촛불 위치에 적절한 크기의 하얀색 표시를 하면서 촛불의 숫자를 세어나가는 방식이다. 얘기를 들어보면 좀 복잡하게 들리는데 실제 그림을 보면 간단하다. 예시의 경우를 보자.


이 그림에서 촛불이 몇 개일것 같은가? 촛불 하나하나를 육안으로는 분명히 구분할 수 있지만, 정작 일일이 헤아리자니 좀 버겁다. 이 사진을 위에서 언급한 방식으로 처리하면 결과는 다음 사진과 같다.
























하얗고 조그만 픽셀 상자가 전 사진에서 촛불이 있던 자리에 대체되었다. 이러면 두 사진을 비교함으로써, 이 방법을 얼만큼 신뢰 할 수 있는지 대충 감이 잡힌다.
자세히 보면 틀린 부분이 없지 않다. 빌딩 유리에 비친 촛불도 센 경우가 있으며, 자동차 헤드라이트도 헤아려졌다. 또한 정작 촛불인데 희미하게 나와서 못 세어진 경우도 있다. 하지만 두 사진을 잘 비교해보면 적어도 오차가 20% 이상은 되지 않으리라 나는 추정한다. 적어도 불량화소 잡는 프로그램으로, 검은색이 아닌 모든 픽셀을 촛불로 계산하는 것보단 좀 더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가? 어쨌거나 이 방법은, 촛불인데도 놓치거나 겹친 촛불을 적게 세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조금 보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즉 이 사진에서 계산한 촛불의 개수는 1172개인데, 실제 촛불의 개수는 최소 1172개, 최대 (오차 20%를 감안하면) 1400개 정도라고 해석해야 한다.

















그럼 이제, 어제 오늘 이글루스를 뜨겁게 달궜던 문제의 사진을 보자. 바로 이 사진이다. 출처는 박민성님의 이글루스(이도 2차 소스이긴 하다.)이다.

위의 사진을 앞에서 언급했던 방법으로 처리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두 사진을 각기 확대해서 비교해보기 바란다. 내 의견으론, 이 대형 사진의 경우 오차율은 대략 50% 정도로 올려잡고 싶다. 일단 놓친 촛불도 많고, 세지 말아야 할 것을 센 것도 꽤나 보인다. 예를 들어 가로등이 비쳐 노랗게 빛나는 가로수 부분이나, 건물 창에 비친 촛불들, "대운하반대"가 쓰여진 플래카드 중 상당 면적이 촛불로 세어졌다. 물론 촛불임에도 세어지지 않은 픽셀이 종종 눈에 띤다. 그러나 그런 오차를 다 감안해도 (두 대형사진을 확대해서 육안으로 비교해본다면) 오차률은 최대 50%를 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방법으로 계산된 촛불의 개수는 얼마일까? 두둥...

43830개다. 오차율 50% 잡아서 최대로 늘려 계산해도 66000개를 넘지 않는다. 사실 이 수치에는 나 자신도 꽤 놀랐다. 20만은 그래도 최소한 10만은 넘을 줄 알았는데. 하여간 그러므로 20만개 운운했던 계산은, 내 의견으론, 너무했다. 물론 이 결과만 보아도 경찰들의 해석이 틀렸음은 명백하다. 시위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초를 켰다고 해도 대충 6만명이 참석했다는 이야기인데, 상식적으로 촛불 하나당 2명에서 3명 정도 초를 켜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고 가정해본다면 이날 이 사진에 잡힌 공간에 있었던 시위 참가자는 대략 18만에서 24만 정도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이 사진이 잡지 못한 사람들도 더 있다면 전체 참가 인원은 더 늘겠지. 그래도 70만...까지는 좀 아니지 않나 싶다.

하여간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저 사진에서 촛불이 20만이라는 해석은 동의할 수 없다.
둘째, 나의 방법으로 센 촛불은 대략 45000에서 65000사이다. 대략 60000에서 퉁치자.
셋째, 그러므로 경찰들이 주장하는 시위 참가인원 8만은... 대략 어이없다. 뭐 70만도 좀 그래 보이긴 하지만.

by 비토 | 2008/06/12 18:49 | 비지니스 | 트랙백 | 덧글(2)

비지니스 프렌들리? 과연?

비지니스 프렌들리하다는 정부가 있다. 그 정부가 얼마전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자유화를 미국과 합의했다.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오염 위험이 있어, 과거 한동안 제한적으로 수입되었던 품목이라는 점이다.

나도 소싯적에 패밀리 꾸리면서 비지니스 꽤나 해봤던 사람이다. 비지니스의 핵심은 협상이다. 그리고 그 협상에 대한 평가는, 협상에서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고, 준 것이 무엇인지 그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보면 명쾌하게 나온다. 비지니스 프렌들리 정부가 미국에 준 것은 확연하고 대단하다.  여태까지는 뼈조각만 섞여도 검역과 수입을 금했던 미국산 소의 (광우병 인자인 프리온이 남아있을 확률이 가장 높다는)뇌와 척수까지 제한없이 수입이 가능하게 되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연령이 30개월이 넘은 늙은 소의 고기도 수입이 가능해질 것이다. 한국과 비슷한 수입 규모를 유지하는 그 어떤 국가도 허락해본 적이 없는 파격적인 협상 조건이다. 사실 미국이 얻은 최대의 수확은 이 협상 결과를 다른 나라와의 흥정에서 선례로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럼 이 어마어마한 양보의 반대 급부로서 비지니스 프렌들리 정부는 무엇을 얻었나? 없다.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

비지니스 프렌들리 정부의 보스가 한 말이다. 질 좋은 고기를 싸게 얻을 수 있게 된 것이 성과라고. 헛소리다. 협상으로 우리가 얻은 것이 싼 가격(광우병 위험이 상존하며 30개월 넘은 늙은 소의 고기도 수입이 풀린 마당에 질 좋은 쇠고기를 얻었다는 것은 말이 안되고)이라면, 일반적인 미국산 쇠고기 수출가의 5~60%의 시세로 고기를 들여오도록 가격이라도 후려쳤어야 말이 된다. 그랬는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협상의 이익이 저렴한 가격이라는 건가? 협상에서 얻은 것이 아니어도 발생하는 이익은, 어딘가에서 발생하는 손해의 이면이기 쉽기에 그걸 변명으로 협상을 평가하는 것은 천박한 눈속임이다. 도대체 비지니스 프렌들리 하다면서 비지니스의 핵심인 협상을 왜 이렇게 못하는 건가? 아니 이건 협상도 아니다.

이러니 검역 자주권이나 국민의 건강권 보호 차원에서의 문제점은 논할 필요도 없어진다. 비지니스도 제대로 못하는 정부에게 국가의 책무를 기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비지니스 프렌들리 정부의 보스를 보니, 참 보스짓 쉽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뉴욕 패밀리에서 이런 식으로 협상 몇 번 했다간, 얼마 못가 "내 모자를 걸어 놓을 자리조차 남지 않을텐데" 말이다.

by 비토 | 2008/04/30 10:15 | 비지니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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